개발자가 된지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냥 수학을 하는 사람

원래 나는 딱히 꿈이 없는 그냥 수학을 하는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그냥 수학을 했고, 그래서 아무 고민 없이 그냥 이과에 진학했고 살다 보니 수학과를 나와서 수학강사를 하고 있었다. 강사도 얼결에 전화를 잘못 받아서 그렇게 다음날 면접을 보고 그 다음날 출근을 하고 2년을 아이들을 가르쳤다. 꼴찌 반을 맡아 1등 반을 만들었고 애들을 성장시키는 거를 보다가 부러워져 나도 성장하고 싶다를 외치며 개발자가 되었다.

전공자였던 옆자리 짝꿍을 이겨보겠다며 아침 6시에 일어나 교육원에 1등으로 가서 공부하고, 따로 책을 사서 그날 공부한 분량 그대로를 집에서 또다시 공부했다. 일어나면 개발하고 자기 전까지 개발하며 1년 반이 지났다. sql, java, html, css, javascript 하나도 모르던 그저 수학과 출신이라 기대를 받던 교육생 하나는 에이스 전공자 짝꿍을 이겨보겠다며 불타올랐다. 결국 이기진 못했고 반에서 탑2를 했다. 이긴다는 표현도 웃기긴 한데 나름 진지했다.

교육원에서 다들 취업을 하나둘씩 했고 나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흔한 이력서 한 번을 안 내고 팀 프로젝트의 a부터 z까지 작업을 했다. 정규시간에는 팀원들의 코드를 봐주느라 보내고 팀원들을 보내고 난 뒤는 내 할당을 하느라 집에 제일 늦게 갔다. 그때가 제일 재밌었다. 잘한다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고 우물 안의 왕개구리가 되었다.

1년 전 개발자로 첫 출근을 했다.

1년 전 오늘 나는 개발자로 첫 출근을 했다. 어느새 오지 않을 것 같던 이 회사에서의 1년이 지났다. 1년 내내 이직을 갈망하며 전력질주했고 나는 아직 이 회사에 있다.

이직 준비는 입사 전부터 했으니깐 1년 되었고,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한 것은 2개월이 지나고 있다. 이 시간 동안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솔직히 많이 힘들다. 회사에 기여를 많이 했지만 서비스, 솔루션 회사에서 원하는 개발자로써는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회사를 빨리 옮기고 싶었다. 지금 회사가 기술적으로 부족하다거나 그런 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달라서 더 멀어지기 전에 나오고 싶었다.

탈락을 할 때마다 솔직히 마음이 많이 무너졌다. 그때마다 회사에 일이 생겼고 그걸 해결했다. ‘아.. 나 너무 잘하는데’ 이러면서 회복했지만 어느새 그 생각은 ‘여기서만 잘하나? 여기 일만 잘하게 되면 어떡하지’로 변했다. 면접에서 느낀 경험해 보지 못함으로 인한 무력감이 너무도 크게 다가와 회사 일에 성과를 내도 회복이 되지 않았다

초행길은 천천히 주변을 탐색하며 가야 된다. 개발도 마찬가지다. 나는 처음 해보는 건 속도를 낼 수 없다. 첫 번째 불안감이 크다. 두 번째 납득이 가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찝찝하다. 그래서 천천히 차근차근 짚고 넘어가는 편인데, 기다려주는 곳은 없었다. 당장의 퍼포먼스를 원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엄청난 무력감은 나를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최근에 본 1곳의 시니어 분께서 계속 나의 상태를 체크해 주셨고 나의 느림을 이해해 주셨다. 언젠가는 나와 맞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좋은 개발자를 뽑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별거 아닌 쉬운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골칫덩어리들이 쉽게 해결된다. 수학 전공생들에게 오히려 쉬운 문제를 던져주면 풀지 못한다. 흔한 덧셈 문제를 미적분으로 풀려고 해서 그렇다. 어려운 것들만 하다 보니 쉽게 생각하는 법을 까먹어서 그렇다.

나는 강사 시절 초4부터 고3 이과 수학을 모두 가르쳤다. 주변에서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했는데 학원에서 하라고 해서 했다. 여하튼 덕분에 문제를 푸는 방법이 굉장히 확장되었다. 그래서 한 문제에 여러 풀이를 다 알려주었고 (사람마다 이해되는, 맞는, 선호하는 풀이가 다르기에 한 가지 방법만 알려주는 걸 싫어함) 내 풀이가 맞는다고 단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려울수록 학생들과 같이 풀었고 내가 문제를 풀다 가도 방법이 맘에 안 들거나 너무 어려운 접근 같으면 주저 없이 애들한테 어떻게 풀었냐고 물었다. 나는 이 방법을 지금 개발자를 하면서도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팀은 이 방법이 아주 잘 적용되어 있다. 팀의 막내 두 명이(나 포함) 물음표 살인마이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과차장님들이 버거워하셨는데 이제는 같이 그런다. 직급이 어떻든 모르면 모른다고 주저 없이 “헬프미!!!!”를 외치고 다 같이 모여 여러 방법들을 나눈다. 덕분에 쌩 신입시절 설계도 고쳐보고 (우리 회사에서 신입이 이런 적이 없음. 애초에 신입에게 안 줌.) 실제 과차장님들이 못 찾은 버그들도 잡아냈다. 당연 내가 받는 도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난 말하는 감자니깐. 각자 잘하는 걸 서로 기브 앤 테이크 하면서 우리 팀은 올해 기록적으로 장애가 없었다. 최근에 배포한 것들 모두 포함해서.

사실 우리 팀의 전력이 작년의 반 토막이다. 하지만 성과는 몇 배였다. 팀의 베테랑 분들이 반 이상이 다른 팀으로 가버렸고 우리 팀엔 말하는 감자 신입 두 명, 업무 지식 제로베이스이신 시니어 두 명이 들어왔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4명에 기존 4명이 한 배에 탑승했고 회사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서비스의 시즌이 시작되었다. 결론은 남의 일, 참견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팀의 성격으로 인해 성공적인 항해를 마쳤다.

채용은 참으로 어렵다. 한 사람으로 팀의 미래가 달렸다. 지금 내 회사의 HR이 과연 어떤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나는 동료를 어떤 가치를 중점으로 보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나는 이 회사에 들어올 때 기술 면접이 없었다. 면접이 끝나고 나니 인성면접 100 이었다. 교육원의 소개였고 당시 반에서 탑 2로 프로젝트 팀장을 맡고 있어 추천을 받았지만 그래도 기술 면접이 없다는 것에 충격이었다. 팀장님은 인성이 젤 중요하다고 외쳤고 주니어는 유니콘들 빼면 (유니콘은 여기 안 온다고.. 하시더라..) 사실 거기서 거기라 가르치면 웬만하면 된다 하셨었다. 놀랍게도 그게 된다. 팀장님은 그동안 기술, 실력은 좋지만 책임감 없고 이기적인 성향을 가진 동료들에게 데인 기억이 많아서 이번에는 팀을 위해 오로지 인성으로만 뽑겠다고 이를 갈고 우리 팀을 만들었다. 놀랍게도 성공했다.

생각해 보면 열심히 할 사람 뽑으면 지금 당장은 미숙해도 가르치면 놀랍게 성장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근데 그 퍼포먼스를 내기까지 회사가 기다려줄 수 있는지 그렇게 이끌어줄 여력이 되는지가 관건이다. 우리 팀은 본격 시즌 시작 2개월 전에 팀 빌딩이 완료되었고 뭐 이렇게 되었다. 이해될 때까지 물어보는 감자들과 절대 그냥 넘어가는 걸 보지 못하는 리더분덕에 우린 성장했다. 징글징글하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사실 거창한 건 없다. 자금적 여유만 있다면 카페 아르바이트하면서 지금처럼 스터디하고 소소한 개발만 해도 즐거울 거 같다. 즐거운 개발을 하고 싶고 도움이 되는 개발을 하고 싶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징그럽다 징그러워하면서 일하는 나는 일할 때, 개발할 때 제일 재밌고 힘이 난다.

유연한 사람이 되자. 강사 시절 아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후에 그런 시니어 개발자가 될 수 있기를

하 힘들다. 좀만 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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